몇 해 앞서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마을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게 된 정려각이 하나 있습니다. 마을 고갯마루에 세워진 건데 꽤 깨끗하고 잘 가꾸고 있네요.
앞서 소개한 홍귀달 선생을 배향하는 <임호서원>이 있던 바로 그 마을입니다.
마을 앞 큰 나무가 매우 인상 깊었던 곳이지요.
위 사진은 두어 해 앞서 겨울에 찍은 사진이지요.
길도 그대로이고 나무도 옷을 벗은 채 있는 것 말고는 똑같네요.
그 왼쪽길을 따라 가다보면, 길가에 작은 정려각이 하나 보입니다.
보통 이런 정려각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있는데 꽤 깔끔합니다. 아주 오래된 것이라면 낡아있기 마련인데 말이에요.
단청도 깨끗하고 현판도 보입니다. <열부각(烈婦閣)>이었네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안쪽을 들여다봤는데 정려각 안에는 이 정려각의 내용을 알 수 있는 현판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빗돌만 하나 서 있습니다.
<열부양주조씨지비(烈婦楊州趙氏之碑)>라고 쓴 빗돌입니다.
열부 양주 조 씨 부인을 기리는 빗돌이군요. 이 분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어머나~! 제가 생각한 그 먼 옛날 조선시대 어느 열녀 이야기가 아니네요. 6.25 한국전쟁 때 전쟁에 참가한 남편이 전사하자 목숨을 끊은 부인의 이야기였어요. 놀랍군요.
알림판 글씨가 희미해서 사진으로 찍어도 잘 안 보이네요. 제가 옮겨 써볼게요.
양주조씨 열부각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666-1 이 각은 열부 양주 조씨의 열행(烈行)을 길이 빛내기 위하여 1982년 함창유도회(咸昌儒道會)에서 조씨열부 선양위원회를 조직하여 1984년 2월에 열부각을 건립하였다. 열부 양주 조씨는 18세의 나이에 백정흠에게 시집와서 여인의 예(禮)를 다하다 남편이 6.25 사변에 자원입대하자 통일이 되기를 기원하였으나 남편이 갑자기 멸공전선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슬피 울며 곧 자결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식구들의 만류와 초상을 치루지않고 죽는 것은 영혼을 달래지 못하는 것이며 부도(婦道)를 어기는 일이라 생각하고 초상을 치른 뒤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신흥마을에 위치한 이 비각은 원기둥의 형태이며 익공의 주두(柱頭)에 창을 설치한 맞배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
우와~!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열녀 이야기이네요.
문화재 찾아다니면서 열녀각이나 효자각을 많이 봅니다. 모두가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이고 또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로 조선시대의 열녀각은 요즘 우리들의 잣대로 보면 좀 실망스럽기도 하답니다.
여인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사대부 집안의 욕심으로 채워져 정려를 받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이 양주 조 씨 부인은 그리 멀지 않은 때인 6.25 한국전쟁 때 인물이라고 하니 놀랍네요. 게다가 지역 유림들의 뜻으로 세워진 열부각이라 그 뜻이 매우 남다릅니다. 22살 젊은 나이에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뒤따른 부인의 이야기는 조선시대 그 어떤 열녀들의 이야기보다 더 감동을 주네요.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666-1
※ 카카오맵에 <양주 조씨 열부각>이 등록되지 않았더라고요.
이번에 글쓰고 등록신청을 했더니, 7월7일에 등록되었다고 메일이 왔네요.
카카오맵 고맙습니다. ^^
함창읍 신흥리 마을에 있는 또 다른 볼거리 임호서원도 함께 둘러보세요. ↓
https://sunnyhanbit.tistory.co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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