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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진주대첩 이의정 정문과 장군의 말무덤? [영동 이의정 정문, 가곡리고분]

by 한빛(hanbit) 2026.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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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정 정문

 

이의정 정문

 

앞서 소개했던 어린이들과 만나 정말 기분 좋았던 진주대첩 영웅 이의정 장군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내려오면 정문이 있습니다. 정문이 뭐냐고요?

네. 조선시대에는 충신과 효자, 또 열녀를 표창할 때 그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을 정문이라고 했습니다. 장군께 내려진 정문은 마을 야산 위에 있습니다.

마을 들머리 쪽으로 내려오면 사진에 보이는 저 산 바로 밑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이 길 끝에 정자도 하나 보이네요.

앞으로는 금강과 합쳐지는 양강이 흐릅니다.

채하정

앞에 보이는 정자는 채하정입니다. 채하정은 양강 기슭의 마을에 있는 정자인데요. 옛날에 있던 건물은 오래되어 무너졌는데 이 지역 선비 24 명이 뜻을 모아 계를 만들어 자금을 마련하고 1934년 7월 정자를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의정 정문은 바로 여기 채하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됩니다.

길 끝에 농가가 있고요 그 오른쪽 산비탈에 정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높다란 계단이 인상 깊습니다.

짜잔~! 네. 계단으로 올라서니 정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은 정문인데도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건물입니다. 단청도 칠해져 있고요.

이의정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이 정려는 경종 2년인 1722년에 내렸습니다. 정문은 앞면 옆면 모두 1칸 크기로 지었네요.

잘 다듬은 돌 위로 기둥을 올렸습니다.

영동 가곡리 열효문

그런데 다른 곳에서 보던 일반 정문이나 정려각과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뭘까요?

바로 위 사진은 영동 가곡리 마을에 있는 열효문입니다. 정려각이지요. 이의정 정문과 다른 점이 뭔지 눈치채셨나요?

네. 보통 정려각은 사방을 홍살(붉은 창살)로 둘러놓았답니다. 하지만 이의정 정문은 보다시피 잘 다듬은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다가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와 윗부분만 가로로 나무판으로 막은 게 다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효자각, 열녀각, 충신각 등 정려각을 많이 보고 다녔는데 이렇게 뻥 뚫려있는 건 처음 봅니다. 

정문 안에는 정려 현판을 하나 걸어놓았습니다. 

忠臣贈通政大夫兵曺參議 行朝散大夫 守保嶺縣監 李義精之門(충신증통정대부병조참의 행조산대부 수보령현감 이의정지문)

景廟 任寅 命旌(경묘 임인 명정)

 

이의정 장군은?

이의정 장군(1555∼1593)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이규보의 8대손으로 조선 선조 16년 때인 1583년에 무과에 급제했지요.
보령 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왜군이 조선으로 쳐들어오자 이의정 장군은 의병을 모집하는데요. 의병들을 이끌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진주성으로 달려갑니다.
호남의 곡창지대가 뚫리지 않도록 당시 김천일과 최경회 등 많은 관군과 의병이 진주성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끝내 남문이 뚫리며 진주성이 함락되고 말지요.
이때 많은 장군과 병사들이 왜군의 손에 죽기 싫어서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분입니다.

 

이 정문에서는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봉곡교 너머로 소나무숲이 이름난 송호리 양산팔경이 있습니다. 또 거기부터 시작하는 양산팔경 금강둘레길도 있지요. 여러 가지 풍광을 즐기며 걷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랍니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과 산악회에서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정자는 양산팔경의 하나인 강선대, 그리고 왼쪽 노란 기둥은 송호금강물빛다리입니다. 

정문에서 내려다보는 봉곡리 마을풍경도 무척 예쁩니다.

이의정 장군의 말무덤? 영동 가곡리고분

영동 가곡리고분

 

이의정 장군의 유적에 있는 선생의 무덤은 실제로 시신은 없고 옷과 신발만 묻었다고 했지요.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셨기 때문에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군의 유적에서 멀지 않은 마을 가곡리에는 커다란 무덤이 하나 있는데요. 이 무덤을 마을에서는 '말무덤'이라고 합니다.

장군이 진주성에서 순절하자, 장군이 입던 옷을 물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며칠 동안 밤낮으로 울다가 죽었고, 고향 사람들이 죽은 말을 묻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무덤을 바로 영동 가곡리 고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무덤은 훗날 7세기 신라 때 어느 사람의 무덤이라고 판명되었다고 하네요.

이 고분은 1993년 7월에 발굴조사를 했는데요. 조사를 해보니,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었다고 합니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보아 7세기 중엽의 것으로 추정하였고 신라의 김흠운 장군이 백제와 조천성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실과 <양산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처음 발굴조사 때는 봉분이 지름 5m에 높이는 1.9m였는데요. 지금은 지름 9m, 높이는 3m로 새롭게 단장을 했습니다.

이 가곡리 고분이 이의정 장군의 말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신라 장군의 무덤으로 최종 추정한다는 말이네요.

 

이런 말무덤 이야기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대부분이 주인이 입던 옷이나 갑옷을 물고 온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의 충의를 기리려고 조금은 과장되게 한 것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곡리 고분에서도 노란 송호금강물빛다리가 보이네요.

그리고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한창 공사 중인 넓은 터가 있어 길도 막아놓고 했더군요. 알고 보니, 영동 스마트팜 단지를 만드나 봅니다. 앞으로 이 작은 마을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겠구나 싶네요.

가곡리 고분 위쪽에 하얀 목련꽃이 활짝 핀 곳이 보이는데 이곳에는 인천 이 씨 원동의 처인 선산 임 씨 열행과 아들 이상구의 처인 구례 장 씨의 효성을 기리는 열효문이 있습니다.

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거경 선생의 무덤과 선생을 기리는 충렬사적비가 있습니다. 이분 또한 임진왜란 때 73세의 나이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 금산에 있는 중봉 조헌 장군의 군진으로 가던 중에 낙안진에 이르렀을 때 왜적을 만납니다.

왜적이 협박하며 활과 칼을 들이대자 엄하게 꾸짖으며 굽히지 않자, 끝내 돌멩이를 입에 물리고 아들과 함께 왜적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영동에는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쳐 순국한 분들이 많이 계셨네요. 이의정 장군의 유적지와 함께 이런 곳들을 돌아보면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분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걸 느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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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가곡리고분 -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141-7

이의정장군 유적 - 양산면 봉곡리 산 30

이의정 정문 - 양산면 봉곡리 380-1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ZcPg0EmjIfk?si=WkYTy-QdRfjVtJ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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