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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아이고, 오늘 한강 정구 선생이 손수 심은 매실을 드신 겝니다 [성주 회연서원]

by 한빛(hanbit)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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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 선생을 기리는 성주 회연서원

앞서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선생께서 글방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던 사창서당을 둘러보며 소개했는데요. 오늘은 약속한 대로 한강 선생의 또 다른 유적인 <회연서원(檜淵書院)>을 소개할까 합니다.

회연서원 들머리에 이런 게 생겼네요. <무흘구곡 경관가도>

무흘구곡(武屹九曲)은 한강 정구 선생이 바로 여기 회연서원 뒤쪽에 있는 제1곡 봉비암에서부터 성주댐을 거쳐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암 아래 계곡에 자리 잡은 제9곡 용소폭포까지 약 35km 구간에 걸쳐 경관이 뛰어난 곳 아홉 곳을 뽑아 손수 칠언절구 시를 지어 그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선생이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인 주희(朱憙)가 쓴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따 이곳 대가천을 따라 뛰어난 경치를 보며 쓴 무흘구곡이랍니다.

그 옛날, 이 무흘구곡을 찾아보겠다고 이틀에 걸쳐 대가천을 따라 샅샅이 찾아다녔던 때가 있었지요. 2008년이었는데, 그때는 제대로 된 알림판도 하나 없어 하나하나 찾아내느라고 아주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쓴 기사가 있는데요. 아래에 링크를 할게요.

지금은 이렇게 제대로 된 안내판도 서 있고 또 선생께서 쓴 싯구도 적혀 있어 알아보고 찾기 쉽게 되어 있네요.

 

※ 무흘구곡은 성주댐 아래쪽 수륜면의 봉비암, 한강대와 성주댐 상류의 무학정(배바위), 입암(선바위), 사인암 등과 김천시 증산면의 옥류동, 만월담, 옥룡암(와룡암), 용소폭포입니다.

 

※ 2008년 5월에 쓴 한빛의 기사입니다. 시 따라 굽이굽이 우리도 풍경이 됐네 -오마이뉴스 손현희-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97490

 

시 따라 굽이굽이... 우리도 풍경이 됐네

"이야~! 정말 물 맑다!""그러게. 이렇게 넓은 물길이 가는 내내 끝까지 이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대가천 물이 참 맑다.""게다가 저 바위들 좀 봐! 어쩜 저렇게 멋지게 생겼대?"정말 그랬어

www.ohmynews.com

 

'見道樓' 견도루? 현도루?

들머리엔 회연서원 안내소인데요. 원하면 문화해설사 님의 설명과 곁들여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그 옛날 왔을 때보다 더욱 깨끗해지고 둘레 경관도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견도루, 현도루?

'見道樓' 견도루? 현도루?

예전에 갔을 때는 한자 편액만 보고 '견도루'라고 알았습니다. 볼 견(見) 자인데, 이 문루를 지나 들어가면 서원 강당이 나오니 쉽게 '도를 보는 곳' 또는 '한강 선생의 학문을 우러르는 곳'으로 풀이를 했지요. 그러나 뵈올 현(見)으로도 읽는 한자라서 '현도루'라고 읽는다고 하네요. 이 말 또한 선생의 학문을 뵈옵는 곳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요. 둘 다 비슷한 말이라서 어떻게 읽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네요. 그러나 안내판에는 '현도루'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서원 앞 문루인 현도루, 그 모습이 매우 웅장합니다.

남명 조식, 퇴계 이황 두 분을 스승으로 모셨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서원 동쪽에 빗돌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강 정구 신도비>입니다.

한강 정구 신도비에는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가 담겨 있습니다.

조선 중기 대학자인 한강 선생은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매우 좋았고 일찍부터 글을 잘 지었습니다. 그야말로 신동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해요. 열 살 때에는 대학과 논어의 내용을 거침없이 설명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남명 조식 선생한테 성리학을 배웠고 뒤에는 퇴계 이황 선생을 찾아가 선생의 학문을 배웠으니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두 스승한테 학문의 정통을 모두 이어받게 되었지요.

회연서원이 있는 곳은 본디 한강 선생이 1583년에 <회연초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곳입니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인조 5년인 1627년에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다가 서원을 지어 향사를 지냈고요. 숙종 16년 때인 1690년에는 임금한테 서원의 이름을 받는 사액을 받았지요.

회연서원 편액은 숙종 임금이 쓴 친필

회연서원(檜淵書院) 편액은 한 때, 인조 대왕이 쓴 글씨이다, 아니다 한석봉의 글씨이다 하면서 여러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 편액은 숙종 임금이 사액서원을 내릴 때에 손수 쓴 글씨라고 합니다.

이 편액 때문에 지난 2008년 제가 회연서원을 취재할 당시에 한강 선생의 13대손인 정원용 선생께 전화를 드려 직접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그 기사 이후로는 이 편액 글씨가 숙종임금의 친필이라는 걸 완전히 못 박았지요.

당시 취재후기에 쓴 글입니다.

[취재 후기] 회연서원 편액 글씨는 '숙종'의 친필

지금 회연서원 대강당에 걸려있는 편액에 쓴 글씨를 두고 서로 맞지 않는 얘기가 많았답니다. 인조 임금이 쓴 글씨라고 들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거의 명필가 한석봉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답니다. 그래서 더욱 정확하게 알아야겠기에 이리저리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한강 정구 선생의 13대손이 되시는 어른께 전화 인터뷰로 여쭤봤지요.
정원용씨(84)는 (사)담수회 회장을 5년 동안 맡아오셨는데, 우리나라 전통문화 계승발전에 이바지하고, 윤리, 도덕을 현대사회에 맞게 널리 알리고 펼치는 운동하는 분이시랍니다. 이분께서 자세하게 알려주셨는데, 회연서원이 사액서원이 되었을 때가 조선 숙종 16년(1690)이고, 편액도 숙종 임금이 쓴 친필이라고 밝혀 주셨습니다.
회연서원(檜淵書院), 편액 글씨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이 기사와 함께 숙종 임금의 친필임을 밝힙니다.

또 한 가지 소식도 들려주셨는데, 한강 정구 선생이 마지막에 살던 곳이 대구 사수동이라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앞서 불이 나는 바람에 선생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학문 자료들이 불에 타버려서 몹시 안타까워하셨다고 해요. 지금 대구 사수동에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한강 공원'을 세울 계획이라는 얘기도 들려주셨지요. 마지막으로 도움 말씀을 주신 임노직 국학진흥원 연구원, 한강 선생의 후손이신 정원용 선생님, 정능식 선생님께 매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2008년 5월 오마이뉴스 손현희]

 

망우암
옥설헌
불괴침

또 안쪽에 걸린 망우암 현판의 글씨는 한강 선생의 으뜸 제자였던 미수 허목이 쓴 글씨이기도 합니다.

회연서원의 강당 이름은 경회당(景晦堂)입니다.

경회당 대청에서 내려다보는 동재와 서재

회연서원 정료대

강당 뜰 앞에 있는 저 돌기둥은 무얼까요?

회연서원 정료대(庭燎臺)입니다. 밤에 뜰을 밝히는 불을 피우던 거랍니다. 예전에 후손이면서 관리사였던 정능식 선생(2008년 당시 68세)께 들은 얘기로는 이 정료대를 도둑맞아 새로 세웠다는 얘기(되찾았다 했나, 아니면 새로 만들었다 했나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아마도...)를 들었지요. 세상에나! 이런 것도 훔쳐가다니... 참나원

 

강당 대청에 마련되어 있는 방명록과 한강 선생의 삶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더군요. 

청주한씨 문목공 대종회에서 만든 책인 듯한데 혹시 한 권 구할 수 있을까? 나중에 문화해설사 님한테 여쭤봤지만 구할 수는 없었답니다. 대신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며 일부러 알아봐 주시기도 하셨지요. 그 친절함에 또 무척 고마웠습니다.

회연서원 안내도, 그러나 동재와 서재의 표기가 서로 바뀌었다.
동재 지경재

회연서원 안내도에 따르면 서재가 지경재(持敬齋)로 되어 있고 동재가 명의재 (明義齋)라고 했는데 서로 뒤바뀌었네요. 고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현판을 서로 바꿔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바뀐 건 틀림없습니다.

서재 명의재

또 한강 선생이 스승으로 모신 남명 조식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 이념을 뜻하는 '경(敬)'과 '의(義)'를 상징하여 동재와 서재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한강 정구 선생이 심었다는 매화, 백매원

회연서원 뜰앞에는 매화나무가 무척 많습니다. 봄이면 매화꽃이 피어 굉장히 아름답다고 하네요. 

 

작고 작은 산 앞에 조그만 집을 지어
뜰 가득 매화·국화 해마다 늘어나네.
구름과 물을 더하여 그림 같은 자연 속
이 세상에 내 생애 가장 사치스럽네.
(- 한강 정구 선생이 '백매원'을 보며 읊은 시)

그 옛날 선생이 회연초당을 세우고 뜰에 매화나무를 가득 심어 백매원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지난 2008년 취재 당시에 관리사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한강 선생이 손수 심은 매화나무가 네 그루 남아 있다고 했어요. 그 가운데 하나는 거의 죽어가는 걸 관리사 선생님이 손수 접붙이고 치료해서 살려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새순이 나는 것도 봤었지요.

서원 뜰 안에 있는 저 끝에 있는 나무로 기억하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런데요. 한강 선생이 심은 매화나무 열매로 만든 매실차를 제가 직접 먹었다고 하면 믿어지세요?

그때 이 회연서원에 오기에 앞서 성주 가천면 어느 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왔는데 뭔가 음식이 맞지 않았는지 갑자기 배가 몹시 아프더군요. 차츰 더 심해지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식은땀이 나면서 굉장히 괴로웠지요. 그걸 지켜보던 관리사 선생님이 관리사로 뛰어가 무언가 들고 나오시더군요.

그게 바로 매실 진액이었답니다. 아마도 급체를 한 듯하다며 보통 때는 물에 타서 차로 마시는데 이렇게 급할 때엔 진액을 그대로 먹어야 된다면서 두어 숟가락 떠서 주시더군요.

정말 신기하대요. 잠깐 있으니 조금 전만 해도 죽을 것 같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통증이 깨끗하게 사라지더군요.

이 매실이 이렇게 급체를 하거나 복통이 있을 때는 특효약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아이고, 오늘 한강 선생께서 손수 심은 매실을 드신 겝니다."

 

하며 웃으시던 관리사 선생님이 떠오르네요. 

해마다 손수 키우고 또 매실을 거둬서 이렇게 매실 진액을 담는다고 하시더군요.

 

이번에 회연서원에 가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문화해설사님께 여쭤보니, 이제는 연로하셔서 대구 본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때 만 68세였으니, 이제는 86세쯤 되셨겠네요. 선생님, 내내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강 정구 선생이 손수 심은 매화나무에서 거둔 매실까지 거저 얻어먹었으니 참으로 귀한 영광입니다. 하하하.

회연서원 현도루에 올라서서 강당 쪽을 내려다봅니다.

왼쪽으로는 사당과 관리사 등이 있었는데 때마침 뭔가 공사를 하고 있어서 거기까지 둘러볼 수는 없어 매우 아쉬웠답니다.

현도루 위에서

대신에 이렇게 높은 루에 올라 내려다보며 구경하는 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서원 밖으로는 한강 정구 선생의 신도비도 보이네요.

 

오늘은 앞서 소개한 사창서당과 함께 한강 정구 선생의 유적인 회연서원을 소개했습니다. 두 곳 모두 관리가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오가는 발길이 참으로 가벼웠고 기뻤답니다.

 

★ 회연서원 이야기로 예전에 제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소개했던 글도 함께 보세요.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04117

 

아니, 쟤들이! 대청마루 위를 함부로 올라가다니!

"어라! 여기가 회연서원이구나!""맞다. 접때, 작은리 갈 때 이정표에서 봤던….""이야! 여기였구나. 생각보다 꽤 크네?"깜짝 놀랐어요. 우리는 '무흘구곡'을 이틀 동안 찾아다녔거든요. 마지막 남

www.ohmynews.com

 

 

 

성주 회연서원 -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신정리)

★ 한빛이 꾸리는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vTXegksGnGs?si=FRF6yVHOHGJk5O7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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