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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키큰 나무 두 그루가 인상 깊던 남명 조식 선생 첫 발자취[합천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남명 조식 선생 유적지 탐방 기획1]

by 한빛(hanbit) 2025.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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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에는 키 큰 나무 두 그루가 있다.

지난해 그 무덥고 뜨거웠던 여름날, 상주 목사인 신잠 선생이 세운 서당 18곳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둘러보고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었지요. 올해는 남명 조식 선생(1501~1575)의 유적지를 돌아보려고 준비를 했답니다.

남명 조식 선비길

사실 다섯 해 앞서 5 꼭지에 걸쳐 글은 썼던 적이 있었지요. 그때는 네이버 블로그였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빛국가유산TV 영상으로도 새롭게 만들어보려고 다시 기획한 거랍니다. 

https://blog.naver.com/ssimon777/222008804432

 

[남명 조식 선생 유적지를 찾아서 2.] 남명 선생 생가지 (합천 삼가면 외토리)

앞서 1편에서는 남명 조식선생의 학문을 기리던 합천 <용암서원>과 선생께서 중년에 다시 고향인 외...

blog.naver.com

 

하지만 바로 문제가 생겼네요.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이 남명 선생을 배향하는 합천 용암서원과 선생께서 세운 뇌룡정에는 얼마 앞서 비 피해를 크게 입어 제대로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피해가 너무 처참하여 안쓰럽고 영상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삼가면 외토리 토동마을 이장님

용암서원과 뇌룡정에는 비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지대가 높은 마을에는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남명 선생의 생가지는 둘러볼 수 있었지요. 또 용암서원 문화해설사 님과 토동 마을 이장님의 도움으로 문을 열어주셔서 느긋하게 둘러보았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이장님께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는데요. 바로 생가지로 들어가는 골목 첫 집인데요. 이 집임자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집은 비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 분이 여기 땅을 합천군에 기부를 했다고 하는군요. 그 덕분에 아마도 생가지 앞쪽으로 <남명 조식 문화공원(가칭)>이 만들어질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무

척 고마운 분이네요. 이다음에 또 몇 해 뒤에 가면 또 달라져 있을 듯합니다.

남명 조식 선생은?

여기가 남명 선생 생가지인데요. 지난 2020년에 왔을 때는 한창 복원 공사 중이었답니다.

2020년에 한창 생가지 복원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안쪽을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거든요. 사실 그 뒤로도 두어번 더 와봤는데 그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이번에는 이장님 덕분에 문을 열어주셔서 제대로 구석구석 볼 수 있었답니다. 이왕이면 늘 열어두면 좋을 텐데... 좀 아쉽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이 올린 단성현감 사직 상소문(용암서원)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자 실천적 학풍을 중시한 인물로,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거두로 꼽힙니다.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 재야에서 학문을 닦으며 제자를 길러냈으며, 현실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실천하는 학문으로 이름난 분이지요. 

'사람이 배우면 그 배움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선생의 뜻에 따라 그 제자들 또한 대단한 분들이 있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전장에 나아간 분들, 그야말로 배움을 그대로 몸소 실천했던 제자들로는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임진왜란 의병장들이 많습니다. 

 

또 명종 때 단성현감 사직 상소에서 "궁중의 과부와 어린 임금이 나라를 이끌 수 없다"며 통렬하게 비판을 하신 분이랍니다. 세상에나! 임금과 대비한테 올리는 상소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이런 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남명 선생을 무척이나 우러른답니다. 

조선 중기 명종(1545~1567) 시기에 외척(왕의 친인척) 세력이 권력을 독점한 '척신정치'를 비판한 게지요. 명종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외척인 윤원형, 윤원로 등이 조정을 장악했고, 을사사화(1545)를 통해 대윤(大尹) 세력을 제거하며 척신정치가 본격화되기도 하였으니 참으로 당시 나라 꼴이 어땠을지 상상이 됩니다. 어쩌면 지금도 별반...

 

또 선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유림의 쌍벽을 이루었는데, 두 분의 나이도 동갑이지요. 선생은 특히 의(義)와 경(敬)을 존중하고 늘 실천하는 선비정신을 많이 강조했고, 늘 스스로 깨어 있으려고 경의검(敬義劍)과 성성자(惺惺子)란 방울 두 개를 몸에 지니고 다녔답니다. 방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늘 깨어있는 마음을 다져잡고 하셨답니다.

남명 선생은 1501년(연산군 7년)에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답니다. 이 외토리 토동 마을은 선생의 외가였지요. 본가는 합천 삼가현의 판현에 있었다고 하고요. 

어느 날 한 풍수 도사가 마을을 지나다가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닭의 해(酉年) 태어난 아기가 자라서 현인(賢人)이 된다고 했는데 실제로 다음 해(辛酉年)에 남명 선생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을 우물

이런 예언 때문인지 선생이 태어나던 날, 우물에서 무지개 빛이 뻗쳐 온 방을 가득 채웠다고 하네요. 남명 선생은 이곳 토동마을 생가지에서 5살까지 사셨다고 합니다.

복원할 때 초가를 살렸더라면...

 

본디 처음부터 있던 집은 안타깝게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철거를 하면서 집에 쓰인 주춧돌이나 여러 가지 부재들이 어느 집 구들로도 쓰이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로 폐허가 되어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이렇게 새롭게 고쳐지어 복원을 했네요.

그런데 번듯해도 너무 번듯합니다. 

 

사실, 이장님께서도 그 말씀을 해주셨는데,

"원래 있던 초가로 지어 하나쯤은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걸..."

하시더군요.

실제로 우리가 둘러봐도 건물도 꽤 많고 각각 쓰임도 다른 아주 번듯하고 멋진 집을 짓기는 했는데 초가도 하나쯤 살려두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웠답니다. 물론 초가로 지으면 또 해마다 이엉을 새로 이어야 할 거고 관리하고 유지하는데 어려운 점은 있겠지만 말이에요.

남명 선생 생가지를 지키는 팽나무와 도토리나무

키가 큰 나무 두 그루

생가지를 지키고 있는 듯 우뚝 솟아있는 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왼쪽에는 팽나무이고요. 오른쪽에는 도토리나무인데요. 실제로 앞에서 보면 이 나무들이 굉장히 키가 큽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선생의 생가와 함께 살아왔을 거예요. 

오른쪽 도토리나무는 건물 바로 곁에 있다

이장님께서 제가 이 나무의 이름이 궁금하여 여쭸더니 각각 팽나무와 도토리나무라고 알려주면서 하나 걱정을 하시더군요. 오른쪽에 있는 도토리나무는 키가 너무 커서 어쩌면 베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말씀이었어요. 건물들과 가까이 있어서 자칫 태풍이 불면 나무가 꺾어져 건물을 때려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라고요.

그 말을 듣고 실제로 가서 보니, 그런 걱정도 들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나무를 쉽게 베어내기는 쉽지 않겠지요?

건물 천정에 탱자나무 가시와 가시오가피인가요? 아마도 잡귀나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올려둔 것 같네요.

사당?

도토리나무 뒤쪽으로는 따로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과 맞배지붕 한 칸짜리 건물을 둔 걸 보니, 아마도 사당인 듯 보입니다. 편액은 없지만 그렇게 보이네요.

안채로 들어오면 저 뒤쪽에 우뚝 솟은 팽나무의 크기가 가늠이 됩니다. 나무들이 아주 멋들어집니다.

여긴 무얼까?

여기는 뭐하는 곳인지 전혀 가늠이 안 됩니다. 궁금하네요. 하지만 알아볼 방법은 없네요.

저 좁은 문 뒤쪽에 팽나무가 있는데, 예전에 왔을 때는 나무 가까이에 가서 구경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문이 잠겨있어 팽나무는 더 자세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담장 너머로 들판을 내려다보니, 저런... 제방을 새로 손을 본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저기 어디쯤에 둑이 터졌던 걸까요?

논길 사이에도 여기저기 물에 떠내려온 부유물들이 걸려있는 모습도 보이네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논은 멀쩡합니다. 벼들이 아주 깨끗하네요. 그나마 진짜 다행입니다.

팽나무

생가지를 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저 멀리 지붕들 너머로 보니, 용암서원이 보입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바로 저기 용암서원과 뇌룡정인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복구가 되어야 할 텐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어떤 분의 글과 사진에서 무너진 담장을 새롭게 쌓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빨리 고치고 있다니 참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를 다 둘러보고 내려와 마을 주차장에 서서 되돌아보니, 여기에서도 팽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무척 잘 보이는군요. 부디 아무리 큰 바람이 일어도 쓰러지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그 마음 담아 기도하고 돌아섰네요.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 -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2길 18-11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제작한 <합천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 이야기를 담은 영상 한 편 보고 가세요.★

https://youtu.be/chsfq81PRcE?si=IPvGhtBdNxBiJ2S-

 

https://sunnyhanbit.tistory.com/490

 

남명 조식 선생 유적지가 비 피해를 입었다 <합천 용암서원, 뇌룡정>

얼마 앞서(7월 27일) 합천에 다녀왔답니다. 올해는 지난해 상주 신잠 목사가 세웠다는 18개 서당 탐방에 이어 남명 조식(1501~1572) 선생님 유적을 기획하고 촬영을 다니고 있었지요. 합천군 삼가면

sunnyhanbi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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