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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74

[장수 자락정] 경치좋은 정자 구경 갔는데 매서운 바람에 수박 겉핥기만 하고 왔네! 제가 사는 구미에는 3월 초 한창 봄이 스며들고 있을 때였지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선 나들이길, 장수에 다다랐을 때 어이쿠~! 오늘 날씨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았네요. 장계천 물길이 가늘게 뻗어가는 둑방길을 따라 갑니다. 저 길 끝자락에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이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자락정입니다. 그런데 막상 차에서 내리니 우와! 날씨가 장난 아닙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그리고 또 왜 이리도 추운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자락정(自樂亭)에 왔으니 안내판을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9호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박수기(朴秀基 1429~1510)가 아내의 할어버지인 김영호가 살던 장수로 내려와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박수기는 충청도 유성 사람으로 결혼을 하면서 아내의.. 2022. 4. 21.
적어도 천 년은 되어야 여기에 서지~! [합천 백암리 석등과 석불, 그리고 천년 느티나무]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마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방에 흩어져있던 부재들을 한데 모아서 새롭게 복원해 세운 아주 멋진 보물이 있답니다. 원래 있던 곳이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하는데 다만 이 자리가 그 옛날 또는 의 터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 - 보물 제381호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보물은 바로 이 이랍니다. 보물 제381호로 지정되었답니다. 높이 2.53m, 간주석 높이 111.8cm, 화사석 높이 61.5cm입니다. 주로 절집에서 많이 보던 석등인데, 키가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잘 만든 작품이랍니다. 이 석등은 팔각으로 되어있고 네 면에는 '화창(火窓)'이라고 하는 창구멍이 있습니다. 또 그 나머지 네 면에는 조각을 했는데 사천왕상입니다.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사.. 2022. 2. 11.
삽짝문 달린 초가집, 참 정겹다!<영동 세천재> 초가집 낮은 담장 사이로 사립문이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여기 충북 영동군에서도 또 제가 나고 자란 경상도 땅에서도 이 사립문을 '삽짝문'이라고 했지요. 해 질 녘 아버지가 돌아오실 즈음엔 꼭 할머니가 이렇게 얘기하셨지요. "야이야~~삽짝걸에 나가봐라 아부지 오시나~" 삽짝걸은 사립문 밖을 말하는 거였지요. 삽짝문 정겨움도 좋았지만 살가운 초가집이 더욱 아름다웠던 를 소개할까 합니다. 얼마 앞서 잇달아 소개했던 이나 , 과 등은 모두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있는 마을이었어요. 이 마을이 충주박씨 집성촌이더군요. 오늘 찾아간 도 바로 충주박씨 재실이랍니다. 지금은 재실로 쓰고 있지만 옛날에는 후손들이 학문을 배우고 익히던 배움터였지요. 또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인 만취(晩翠) 성하식(成夏植,1881.. 2022. 1. 25.
[영동 노천리 효자길] 호랑이도 감동한 효자 박응훈 이야기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마을은 예부터 효자 마을로 이름이 났다고 합니다. 49번 국도 길가 비탈진 언덕 위에 비각이 하나 있지요. 바로 오촌 박응훈(梧村 朴應勳, 1539~1590) 선생의 효행을 기리며 나라에서 내려준 정려가 있는 곳입니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54호입니다. 찻길에 바로 붙은 비탈진 언덕이라서 자동차는 에 세워두고 걸어서 와 구경합니다. 저 위에는 정자도 따로 있네요. 이 마을은 충주 박씨 세거지라고 합니다. 오촌 박응훈 선생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박이룡(朴以龍 , 1533∼1595)' 장군의 동생이랍니다. 효자 오촌 박선생 응훈 지려(孝子 梧村 朴先生 應勳 之閭) 오촌 선생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합니다. 부모상을 당하여 장지를 구할 때 호랑이가 나타나 묘소를.. 2022. 1. 19.
<영동 사로당> 80평생 늙도록 한 방에서 책을 읽으며 지낸 4형제 우애가 아름답다 금방이라도 눈이라도 뿌릴 양 하늘이 시커멓게 덮이는 때에 다다른 곳은 영동군 황간읍 매곡리 내동 마을입니다. 아침에 나설 때만 해도 이렇듯 흐리지는 않았는데 목적지에 닿자마자 하늘이 어두워지네요. 내동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49번 국도 앞입니다. 내동 마을 버스정류장 앞에는 아주 낯익은 풍경이 보이네요. 황간역에서 항아리에 쓴 시를 많이 봤는데 그 중에도 박남근 시인이 쓴 항아리 시를 여기서 또 만나네요. 를 찬찬히 가슴에 담고 눈에 그려봅니다. 참 예쁜 시입니다. 박남근 시인이 태어난 고향이 바로 여기 내동 마을이라고 하네요. 내동마을 앞 골목으로 곧장 들어와서 오늘 가려고 하는 곳은 인데 길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저기 위 사진에서 보이는 집 너머에 있는 건물이 바로 그곳인 듯하네요. 이 길이 아닌.. 2022. 1. 18.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옛 절터인 듯한데 이 많은 부재들은 뭘까?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 마을의 옛 이름은 화장(花庄) 마을이었나 봅니다. 내화리 마을 표지석이 있는 59번 국도를 따라 동로면 방향으로 갑니다. 내화교회 시골마을 정겨운 풍경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마을 풍경이 소박해서 참 좋네요. 내화마을 버스정류장 차를 타고 가면서 찍은 사진이라 버스 정류장 곁에 세운 빗돌을 제대로 못 봤네요. 아마도 마을 유래나 이야기를 글로 새긴 듯합니다. 때마침 지나가는 버스를 만납니다. 이런 길에서 버스를 만나면 으레 손을 흔들곤 합니다. 어떤 때엔 버스 기사님도 그 손짓을 알아채고 같이 손 흔들어 주기도 합니다. 59번 국도 곁에 작은 알림판이 보입니다.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이라고 썼네요. 50m 안쪽에 있다고 하네요. 이 알림판을 자칫 놓치기라도 하면 들머리를 못.. 2022. 1. 16.
<단양 적성산성과 신라적성비>단양팔경휴게소에 가거들랑 여긴 꼭 보고 가야지! 적성현(단양군)은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의 뺏고 빼앗기는 영토였다! 예부터 단양군의 지명은 '적성현'이었고, 삼한시대에 백제 땅 마한에 속한 지역이었지요. 고구려를 공략하는 데에 전진기지이자 다리 역할을 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뺏고 빼앗기는 일이 많았지요. 고구려 장수왕때 남진정책으로 고구려 땅이 되었고, 그 뒤 고구려의 국력이 약해지자 신라가 한강 유역을 공격하며 이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라가 적성현을 손에 넣고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서 성을 쌓았는데 그게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하는 입니다. 신라 진흥왕 545~551년경에 세운 산성으로 둘레가 1km가 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무너진 곳이 많고 겹으로 쌓은 북동쪽의 안쪽 벽 등만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적성산성.. 2022. 1. 15.
[합천 묘산 마을 묵와고택과 육우당] 여섯 형제의 우애가 넘치고 화목한 집에서 합천 묘산 묵와고가(국가 민속문화재 제206호)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마을에는 이 있습니다. 이 묘산 마을에 들어온 건 바로 묵와고택을 구경하러 왔던 게지요. 조선 선조(1650년경) 때 선전관을 지낸 윤사성(尹思晟)이 지었다고 합니다. 또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처음 지을 때에는 집터가 600평이나 될 만큼 크고 100칸이나 되는 집이었다고 합니다. 이 집의 이름은 윤사성의 현손인 윤우(1784-1836) 선생의 호인 '묵와(默窩)'에서 따온 것으로, '고요한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난 후 유림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 회의에 우.. 2022. 1. 13.
<하동 정기룡 장군 유허지>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63전63승 정기룡 장군 오늘은 하동군에 있는 를 둘러보러 왔답니다. 충의공 정기룡 장군은 임란의 맹호, 63전 63승 '불패의 장군'이라 일컫는 분이지요. 정기룡 장군 유적지로는 제가 사는 구미와도 아주 가까운 상주시에도 있습니다. 한 10여 년 전(2011년)에 다녀온 적이 있지요. 상주에는 장군의 시호를 딴 가 있습니다. 상주는 '상주 판관'에 임명되어 지낸 곳입니다. 그리고 상주에 장군의 무덤이 있고요. 그때만 해도 저는 정기룡 장군이 상주 사람이라고 생각했네요. 이번에 알고 보니, 경남 하동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찾아간 곳이 바로 정기룡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가 있고 선생의 충심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 입니다. 오늘은 정말 구미에서 하동까지 오로지 이것 하나만 보고 달려갔지요.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 2022. 1. 10.
<영동 매곡면 송계서원 유허비각과 송계서원 단소> 서원은 없어졌지만 송계 육선생을 모셨다!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 마을에는 아주 남다른 비각이 있답니다. 바로 입니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 16 호로 지정된 문화재랍니다. 그런데 이게 왜 남다른지 아세요? 서원 유허비라는데 서원 마당 안에 있지 않고 위 사진처럼 찻길 가에 있습니다. 까닭은 서원이 지금 현재는 없어졌기 때문이랍니다. 송계서원(松溪書院)은 1666년(현종 7)에 처음 세운 서원입니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 송당 박영(松堂 朴英), 남정 김시창(嵐亭 金始昌), 오촌 박응훈(梧村 朴應勳) 등을 봉안하였고 숙종 말에 삼괴당 남지언(三槐堂 南知言), 일석 박유동(一石 朴惟棟)을 추가로 모셨답니다. 이를 두고 송계 육선생(松溪 六先生)이라 하였으며, 봉안문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합니다. 송계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허물어졌답니다. .. 2022. 1. 8.
[거창 정자 3곳] 인풍정, 소진정, 임청정, 한 번에 몰아보자~! 인풍정과 인풍대 앞서 소개했던 거창 바로 곁에 있는 입니다. 거창군 신원면 양지리 마을에 있습니다. 인풍정은 원래 묵일헌 신치중 선생이 1678년에 옛 양촌 마을 동쪽에다가 축대를 쌓고 나무를 심어 바람 쐬기 좋은 곳을 만들어 이를 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923년에 그 후손 신종학이 누각을 세운 것이랍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인풍정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문소 김황(金榥)[1896~1978]이 지은 ‘처사 묵일헌 신공 유적비’입니다. 바로 인풍대를 세운 묵일헌 신치중 선생을 기리는 빗돌입니다. 인풍정은 일제 강점기에는 임시 초등학교 교육 장소로 쓰이기도 했답니다. 또 1953년 6.25 전쟁 때에는 신원면 임시 파출소 건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요. 2012년에는 인풍정 건물이 너무 낡아서 기와도 갈고 .. 2022. 1. 7.
<영동 자풍서당> 서당 안에 웬 고려시대 돌탑이? [한강 정구 선생 유적지] 오늘은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01번지에 있는 을 둘러봅니다. 옆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505번 국도에서 왼쪽으로 보면 높다랗게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저 길로 300m쯤 올라가면 오늘 찾아가는 자풍서당이 나오지요. 원래 차로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거긴 길이 좁고 좀 험하다고 하네요. 그쪽으로는 1km쯤 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걸어서 올라가는 길로 갈 겁니다. 익살맞은 장승이 양쪽에서 호위하는 자풍당(資風堂)이라고 쓴 표지석 뒤로 올라갑니다. 생각보다 꽤 가파릅니다. 이제 겨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저질체력이라 바로 헉헉거리네요. 하하하! 가랑잎이 찬 서리에 젖어 미끄러울까봐 조심조심 걸어갑니다. 그리고 길이 매우 좁아요. 마치 토끼비리를 걷는 것 같았답니다. 처음에 올라올 때는 굉장..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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