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초가와 한옥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만났다! <정읍 신성공소>

by 한빛(hanbit) 2025. 12. 27.
728x90
반응형

정읍 신성공소

금산 진산에서 천주교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선생을 알게 된 뒤, 완주, 정읍, 진안 등 천주교인도 아닌 제가 벌써 넉 주째 '성지순례'를 다니고 있네요. 앞선 글에서는 진산성지, 완주 초남이성지 곳곳을 소개했는데요. 오늘은 정읍에 있는 공소 이야기입니다.

정읍시 신설동 마을 거의 끝자락 쯤에 있는 <신성공소>입니다.

고즈넉하고 평화스러운 신성마을

신성공소가 있는 마을은 예스런 돌담길을 따라가더군요.

공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을에서 거의 끝자락쯤에 있었답니다.

나락을 거둔 휑한 들판 저 끝에 있는 마을 정자가 오래된 나무와 함께 무척이나 멋스럽습니다. 오면서 보니까 정읍 지역의 시골마을마다 마을 쉼터를 이렇게 예스런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로 만들었더라고요. 참 좋은 생각입니다.

이 깊은 골짜기에 있는 공소인데도 우리 말고도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무척 반가웠답니다. 

우리 부부 늘 문화유산만 찾아다니는데, 일반 문화유산에서는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거든요. 이날만 해도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두 팀이 다녀가더군요. 하하하!!!

마을 가장 위쪽 풍경입니다. 어느 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무척 정겹더군요.

신월동은 신성마을과 월성마을을 합해서 된 마을인데 오늘 우리가 간 곳은 신성마을입니다. 신성마을의 가장 끝에는 <신성제> 저수지가 있더군요. 그 아래에 <천주교 신성공소>가 있습니다.

공소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데 담장을 흙돌담으로 둘렀네요.

아, 그리고 주차는 공소 바로 앞에 따로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는 몰라서 마을 앞 들머리에 세워두고 걸어서 왔는데 아주 너른 터가 있었답니다.

정읍 천주교 신성공소는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지만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소중하고 귀한 국가유산입니다.

병인박해 이후, 신자 마을을 이루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요. 팔작지붕을 얹은 한옥 건물이 보이네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정읍의 산골에는 순교자 식구들과 후손들이 곳곳에 '신자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답니다. 이 신성마을에는 일찍이 병인박해 순교 성인을 증언한 '황막달레나'가 살고 있었고, 1882년 전주에서 김순문 등이 이사를 와서 신자 마을이 생겼다고 합니다.

신성마을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인들은 이렇게 박해를 피해 함께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고 합니다. 개개인의 삶이 아니라 신앙으로 하나 되어 함께 일구고 함께 먹으며 함께 나누며 사는 삶이었지요. 그들은 처음 이곳에 들어와 화전을 일구어 담배 농사 등을 지으며 살았다네요.

어머나~! 초가도 있습니다.

공소 앞마당에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너른 마당에 한옥건물과 초가가 함께 있습니다. 이 풍경을 보는 첫인상이 무척이나 평화롭고 아늑해 보였답니다.

성모마리아상과 종탑이 보이고 그 뒤로 신성공소 본당이 있습니다.

오른쪽 초가는 사제관이라고 합니다.

1893년에 신성리 공소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 무렵 이곳 신자 수가 모두 24명이었다고 하네요.

전날부터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곳곳에 눈 소식이 들렸는데, 여기 정읍에 와서 눈구경을 합니다. 

참, 공소가 무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천주교이면 성당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말이에요.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교회를 말하고요. 본당에 속하여 있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나 그 구역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마을에 가까이 있으니 틈틈이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종탑입니다. 어릴 때는 예배 시간이 되면 교회에서 댕그렁 댕그렁~ 종을 치곤 했지요.

제가 어렸을 때 교회 종탑에 메어둔 그네를 타다가 그만 종탑에 눈두덩이를 찧는 바람에 크게 다친 적이 있어 이런 종탑을 보면 늘 그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야말로 추억 돋는 종탑입니다.

사제관이었던 초가가 참 정겹네요.

신성공소 본당 건물은 팔작지붕에 앞면 네 칸 옆면 세 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옛집 건물과 남다른 게 있는데요. 건물 맨 아래 벽에다가 십(十) 자 모양으로 공기구멍을 내놨더라고요.

그뿐 아니라, 지붕 기와에도 십자가 모양을 넣었네요.

신성공소 본당은?

고맙게도 본당에 문이 열려있어 안쪽 모습도 볼 수 있어 무척 고마웠답니다.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모습도 퍽이나 정겹습니다. 맨 앞에 제단이 있고 성화와 옛 사진도 있더군요.

긴 의자가 양쪽으로 일곱 개씩 있는데요. 작은 마을이니 신자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겠지요?

이 문서가 무언 지는 모르겠어요. 안내글은 따로 없더라고요.

이 그림을 보니, 무척 푸근하네요. 바로 '한국의 성모자 인자하신 어머니'라고 하네요. 지난번에 진산성지에 갔을 때 아기를 업고 있는 조선 어머니의 동상이 있었는데 아마도 여기도 그런 뜻을 지녔지 싶네요.

본당 안은 매우 소박한 모습입니다. 

1911년 10월에 찍은 신성리의 옛 모습 사진입니다. 액자 유리가 반사되어 제대로 찍히지는 않았네요. 1900년 이전 정읍 지역에 공소가 14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1903년 김승연[아우구스티노 1874~1945] 신부가 부임하여 이 신성리 공소가 본당으로도 승격이 되었는데, 그 뒤로 꾸준히 신자 수가 늘어났고요. 1982년 통계에는 신자 수가 227명[남자 116명, 여자 111명]으로 정읍에서 가장 큰 공소였다고 하네요.

1909년에 프랑스인 미알롱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과 함께 사제관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는 정읍 읍내에 있는 '시기동 성당'이 본당이 되고 여긴 다시 '신성공소'로 되었다고 합니다.

배롱나무가 V자 모양으로 자랐네요. 그 가운데에 성모마리아상이 있습니다.

사제관

 

초가지붕을 얹은 사제관은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앞면이 일곱 칸이나 되네요.

지난 2003년 천주교 신성공소 100주년을 맞이해서 지금의 본당 건물과 사제관 건물로 복원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2025년)로 122년이나 된 신성공소 역사입니다.

방명록

사제관 마루에 방명록을 두었네요. 저도 [한빛국가유산TV] 이름으로 흔적을 남겼답니다. 하하하

부엌이 오른쪽 가장 끝에 있고 그 뒤를 돌아가니 사제관 뒷모습도 볼 수 있네요. 한 칸을 모두 뜬벽장을 두었습니다. 뜬벽장을 받치는 기둥도 예쁘게 다듬어서 만들었네요. 보통 기둥이 없는 게 많은데 이런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굴뚝과 가스배출기

우물인가? 빨래터인가?

신성공소 너른 마당은 모두 흙돌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그 가운데 아주 남다른 공간이 하나 있었답니다.

바로 여기인데요. 담장 한 곳을 네모나게 바깥으로 담장을 내어놓은 곳이 있더라고요.

여기가 뭐 하는 곳이지?

우물인가? 아니면 빨래터인가?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돌계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물이나 빨래터가 되려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이 말라서 그런가?

이때는 도대체 여기가 무얼 하던 곳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잘 몰랐지요. 나중에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여긴 바로 저장 창고 같은 데라고 합니다. 

그 옛날 프랑스 신부들이 우리나라 음식에 익숙하지 않아 그들이 먹을 빵과 포도주가 상하지 않도록 저장하던 냉장고 역할을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땅 아래쪽으로 구덩이를 파서 만들었으니 온도 차이가 나겠지요. 그 시절 그분들의 슬기로움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저 벽에 난 네모난 구멍 때문에 6.25 한국전쟁 때에 총포를 겨누려고 만든 것이 아니냐면서 오해를 받아 곤란을 겪기도 했다더군요. 

본당 오른쪽으로 좁은 문이 있어 궁금하여 나가봤어요. 문도 활짝 열려 있네요.

아하~! 여기였군요. 

처음에 우리가 여기 올 때, 차로 이 끝까지 올라와봤거든요. 그런데 마땅히 차를 세워둘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되돌려나가 마을 들머리에 세워두고 걸어서 이 반대쪽으로 올라갔던 게지요.

여기도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온 터를 모두 감싸 안았네요.

올해로 무려 122년이 된 신성공소, 지금은 신자 수가 크게 줄어 10명 안팎의 신자들만 남아 여기서 약 7km쯤 떨어진 시기동 본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신자는 처음 세운 때부터 7세대에 이르는 분들입니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여기저기 산골로 숨어 들어와 살던 그 시절 사람들, 서로가 신앙공동체가 되어 함께 모여 살며 함께 농사짓고 함께 나누면서 자기들의 신앙을 곧게 지키며 살아왔던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네요.

정읍 천주교 신성공소 - 정읍시 신월동 145-1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감상하세요. ※
https://youtu.be/04ZS8IJxiNI?si=Wkp1sRvCN1kQIynP

 

https://sunnyhanbit.tistory.com/517

 

'진산사건'을 아시나요? 조선의 첫 천주교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 그리고 윤지헌 [금산 진산성지

천주교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계기 17세기에 이르러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왔지요. 그 시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교 이념이 오랜 세월 동안 지배를 했던 시기였지요. 이런 때에 지식인들 사이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518

 

230년 만에 발굴된 조선 첫 순교자들의 유해, 그리고 백자사발 지석 <완주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조선 천주교 첫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굴된 완주 바우배기앞서 소개한 진산성지에 갔을 때,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였던 윤지충, 권상연, 그리고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윤지헌 세 분의 유해가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519

 

'파가저택' 형벌을 아시나요? [완주 초남이성지는 호남 첫 천주교 발상지]

금산 진산 성지에 갔다가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인 윤지충, 권상연을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유해가 230년 만에 발굴되었다는 완주 초남이 성지 와 지금 현재 모셔있는 까지 가봤습니다. 이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520

 

마치 유럽의 어느 성을 보는 듯한 이곳은? <첫 순교자의 유해가 있는 금산 진산 성지성당>

며칠 앞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인 윤지충, 권상연, 그리고 형의 뒤를 따라 신앙을 이어오다가 신유박해 때에 순교한 윤지헌 세 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드렸지요. 바로 이었습니다.오

sunnyhanbit.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