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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백제 무왕의 지모밀지 천도 꿈이 깃든 곳 [익산 제석사지]

by 한빛(hanbit)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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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제석사지

마을 이름이 왕궁리라고요?


그렇다면, 왕궁이 있던 마을이란 말인가요?
네. 그렇답니다. 마을 이름조차 '왕궁'이 들어가는 이곳은 익산이랍니다.

왕궁리 마을 앞에 차를 세워두고 좁은 길을 따라가면 저기 앞에 <제석사지>가 나옵니다. 그래요. 제석사지는 바로 절터를 말하는 겁니다. 

어머나, 저기 앞에 소나무가 아주 멋지네요.

제석사지(帝釋寺址)는 백제 무왕 때의 왕실 사찰이 있던 절터랍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매우 멋스럽게 휘어지고 구부러져 굉장히 아름다운 소나무입니다.

무왕이 수도를 이곳 익산(옛 이름은 지모밀지( (枳慕蜜地))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왕궁리 유적)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왕궁을 수호하는 절이 바로 제석사(帝釋寺)랍니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따르면 제석사는 백제 무왕 시대[600~641]에 창건되었고, 칠층탑이 있었으며, 무왕이 지모밀지(익산)로 천도하여 세운 사찰로 639년 벼락을 맞아 불에 타 없어지고 그 뒤 같은 자리에 다시 세웠답니다. 백제가 멸망하고도 고려 시대까지 법등을 이어 갔다고 하는데, 처음 사찰 이름은 ‘제석사’였지만 통일신라 시대에 ‘정역사’로 바뀌었다가 고려 시대에 다시 ‘제석사’가 되었다고 하네요.

제석사지는 왕실 수호사찰

1993년 11월 5일부터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첫 발굴조사를 했는데 백제 사찰의 기본 구조인 1탑 1금당인 게 확인되었다고 하네요.

익산 스탬프 투어 한 곳이기도 하나 봅니다. 

발굴조사 결과 절터 크기가 남북 168m, 동서로는 112m에 이르는 백제 사찰 가운데 가장 큰 절로 확인했다고 합니다. 발굴조사에서 나온 유구를 보존하려고 이 절터를 정비하였는데, 기단부를 판축 시공하고 잔디를 심는 등 제석사 절터를 잘 다듬어 놨다고 해요.
목탑터 판축시공은 모두 3중 기단으로 했다고 합니다.

지금 복원해 놓은 절터가 굉장히 크고 넓네요.

벼락을 맞아 모두 불타버린 제석사를 다시 세운 곳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칠층 목탑이 있던 자리랍니다. 탑이 있던 곳인데 이렇게 넓다니요? 역시...

제석사 가람배치도

그 옛날 절을 지을 때 바로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중문을 시작으로 목탑이 있고 그다음이 금당(법당), 강당, 승방지가 일자형으로 차례대로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중문 양쪽으로 회랑이 있었고 그 끝에 동 건물과 서 건물도 있었던 배치 구조라고 합니다.

국립 익산 박물관 제석사지 디오라마

지난 2020년에 국립 익산박물관에 갔을 때 옛 제석사지 건물들을 디오라마로 만들어 전시한 것을 봤는데 탑 하나에 금당 하나 구조로 되어 있고, 강당과 승방지, 그리고 양쪽으로 긴 회랑이 있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답니다. 사진을 찾아보니, 다행히 잘 찍어 두었네요. ^^

이제 목탑터를 둘러볼까요?

목탑지에는 하나 남아있는 유물이 있는데, 바로 탑 가장 가운데 있는 심초석이랍니다. 목탑의 가장 중심 기둥을 받치는 기둥받침돌입니다.

이 심초석 가운데에는 네모나게 구멍이 뚫려 있답니다. 보통 여기에 사리를 봉안해두지요.

그런데 이 심초석을 보면 안타깝게도 깨져서 금이 간 부분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금이 간 부분을 보니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네요.

639년에 제석사가 벼락을 맞고 불에 모조리 타버렸다고 합니다. 그때 이렇게 깨졌을 듯한데 두 동강 난 채로 한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하는데 찾아내어 이렇게 맞춰놓았다고 합니다.

제석사지 유물들

1993년에 발굴조사를 시작해 본격적인 조사는 2007년 이후 모두 세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2011년까지 조사한 결과 1탑 1금당, 목탑의 심초석도 나왔고 또 폐기장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출토했는데, 얼굴 모양을 한 여러 소조상이 나왔다고 합니다.

국립 익산박물관에 전시된 제석사지에서 출토한 소조상 동물상과 승려상

 

국립 익산박물관에 전시된 제석사지에서 출토한 소조 천부상
강당터에서 발굴된 명문와

또 강당터에서는 글자를 새긴 기와인 명문와도 여럿 나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제석사(帝釋寺)라고 쓴 기와도 있어 이곳이 틀림없이 제석사 절터였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고 합니다.

제석사지에서 서쪽으로 보면, 백제의 옛 궁궐이 있는 왕궁리 유적이 보인답니다.

백제 무왕은 익산으로 수도를 옮겨(또는 옮기려고...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설은 학회에서도 아직까지 의견이 나뉜다고 합니다.) 궁궐과 굉장히 가까운 곳에다가 왕실 수호사찰을 세웠네요.

목탑터에서 보면, 모두 一 자형으로 터를 잘 다져놓았습니다.

 

강당터에서 보는 금당터와 목탑터 ↑

강당터는 익산 미륵사지의 강당터와 비슷한 규모라고 합니다. 여기 강당터에서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고요.

연화문 수막새, 인동당초문 암막새 등도 나왔답니다.

제석사지에서 본 왕궁리 유적

아마도 백제 때에는 이곳이 궁궐 사찰이었고 또 하늘신께 제를 올리거나 기우제를 지낼 때에도 여기서 하지 않았을까요? 
조선시대에도 경복궁 둘레에 종묘와 사직단을 둔 것처럼 백제 때에도 궁궐 둘레에는 반드시 이런 사찰이 있었겠지요?
익산으로 수도를 옮겨와 궁궐을 짓고 미래를 내다본 무왕의 원대한 꿈을 조금이라도 느껴봅니다.

승방터

남북으로는 13.1m, 동서로는 65.5m나 되는 넓은 승방터입니다. 이렇게 넓은 곳이라면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함께 생활했을까? 짐작이 됩니다.

제석사지 맨 끝 승방터에서 보는 넓은 제석사 절터

승방터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제석사 절터입니다. 저기 맨 끝에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이 바로 목탑터이지요.

제석사지 출토 석재

제석사지에서 출토된 석재들을 따로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는데요. 초석, 지대석, 갑석 등 여러 종류로 제석사 건물에 쓰였던 부재였다고 합니다.

또 석재들 옆으로는 길쭉한 터가 있는데 바로 동쪽 회랑 터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동쪽 회랑을 남쪽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해 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인 제석사 절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제석사지를 이렇게 잘 복원해 둔 걸 보니 참 기쁘네요.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은 옛 모습 그대로 다 복원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젠가는 이 터에다가 중문도 세우고 목탑도 세우고 금당과 강당도 또 스님들이 생활하던 공간인 승방까지 다 갖춰서 완전히 복원되지 않을까요? 아, 백제 무왕의 꿈을 넘어 한빛의 꿈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익산 제석사지 -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

https://sunnyhanbit.tistory.com/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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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감상하세요. ※

https://youtu.be/mpdCROcMNxs?si=87z_MYgipmyrhl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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