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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과 나들이

[청송 이오덕 문학관] 선생님, 그리운 선생님

by 한빛(hanbit) 202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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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저기 좀 봐!"

"여기 이오덕 선생님 문학관이 생겼나 봐!"

"가만, 그러고 보니 이오덕 선생님이 청송 분이시지?"

 

 

이오덕(1925.11.14 ~ 2003. 8.25)

■ 프로필
  1925년 경북 청송 출생.
  1944년 교원시험 합격으로 자격을 얻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1955년 동시 <진달래>를 <소년세계>에 발표.
  1971년 동아일보에 동화, 한국일보에 수필 당선.
  1976년 제2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한길사가 제정한 제3회 '단재상' 수상
  1986년 퇴직 후 아동문학과 글쓰기 교육,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함.
  2003년 8월 25일, 78세의 나이로 충북 충주시 신니면 자택에서 타계.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님을 여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청송이 고향인 이오덕 선생님은 저희 부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분이시랍니다.

글쟁이랍시고 이런저런 글을 쓰던 때였는데 바로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책 한 권 때문에 그동안 써왔던 많은 글들이 어찌나 부끄럽든지...

우리 말 살려쓰기

바로 선생님이 쓴 책 <우리 말 살려쓰기>와 <우리 문장쓰기>라는 책이었지요.

남편이 먼저 읽고 글쟁이는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면서 제게 건네준 책이랍니다.

이 책을 읽고 진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지요.

그동안 글을 쓰면서 유식병에 찌든 글쓰기를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으로 많이 부끄럽고 낯이 화끈거렸답니다.

 

선생께서 책에서 일러주신 이야기들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것들이었고 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라서 더욱 그랬답니다.

우리 삶에 찌들어 있는 글이 거의 일본식 한자 말이 많았고 그렇게 꼬여버린 글 때문에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는 게지요. 그리고 살가운 '우리 말'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한자말을 골라서 글을 쓰는 버릇을 나무라셨지요. 그러면서 하나하나 잘못된 말을 바로잡아주었답니다.

또 지금도 내가 글을 쓸 때 늘 잊지 않고 따라 하는 선생님 말씀이 있지요.

 

"글을 쓸 때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어야 한다. 어린 아이나 시골 할머니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써라!"

 

제가 <우리 말 살려쓰기>라는 책을 읽고 이오덕 선생님을 알게 된 때가 지난 2004 년이었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꼭 한 해 뒤였지요.

그 뒤 2006 년에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 있는 선생님 무덤에 뒤늦게 찾아가서 뵙고 왔었지요.

얼굴 한 번 뵌 적도 없는 이오덕 선생님이 이렇듯 우리 부부 삶에 큰 산과도 같은 분이었답니다.

 

https://blog.naver.com/ssimon777/222110907991

 

[한글날 574돌을 맞아] '우리 말'을 살리시던 이오덕 선생님을 기리며...(선생님 무덤에 띄우는 2006

그리운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난달 무덤에서나마 선생님을 뵈었던 손현희 입니다. <우리문장쓰기>를...

blog.naver.com

 

그런데 바로 이오덕 선생님 문학관이 이 마을에 생겼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 마을이 바로 선생님이 태어나신 고향입니다.

이 마을 안에 선생님 태어나신 생가도 있다고 합니다.(나중에 집에 와서 알았네요.) 

이렇게 그리운 선생님의 '작은 문학관'이 고향에 생겼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네요.

지나던 길에 얼핏 스쳐 본 안내판을 보고 들어왔어요.

그야말로 작은 건물이네요.

<이오덕 작은 문학관> 이 간판을 내걸었는데,

그 곁에는 이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인 경로당이 한 건물 안에 있네요.

 

아.......... 그런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문이 닫혔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쉽네요.

대신에 전화번호가 적혀있어 많이 망설였는데 그냥 둘레 구경만 하기로 했어요.

이다음에 다시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봐야겠어요.

참으로 푸근한 얼굴입니다.

마치 울 아버지를 보는 듯하네요.

 

아, 선생님!!

 

문학관 앞에 있는 커다란 돌판에는 <우리 고향 화목>이란 글을 새겼네요.

이 글도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글이더군요.

이오덕 작은 문학관 앞에 있는 텃밭이에요.

그 텃밭 너머로 담벼락에 그린 그림이 보입니다.

그 끄트머리에 선생님 얼굴도 그렸네요.

커다란 사과나무 아래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을 그렸네요.

청송은 사과로 이름난 고장이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날도 이제 막 딴 청송 사과 한 상자를 사 가지고 왔네요.

담벼락 그림이 있는 골목을 걸어봤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쓴 동화책 <버찌가 익을 무렵>을 그림으로 그렸네요.

버찌를 따 먹지 말라시던 교장 선생님이 손수 벚나무에 올라가서 버찌를 따먹고 아이들한테도 나눠주는 모습이네요.

 

선생님은 아동 문학가였습니다.

한 평생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지요.

아이들과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재미나게 글로 쓰곤 하셨지요.

그러면서 언제나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을 하셨답니다.

 

아이들처럼 해맑은 이오덕 선생님 웃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선생님 곁에는 언제나 신명 넘치는 아이들이 있었네요.

아이들이 참 잘 따르는 선생님~!

아, 그러고 보니 그 옛날 울 아버지 다니셨던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그 학교도 찾아가 봤던 기억이 납니다. ^^

독립운동가이자 농촌 계몽가인 박치환 장로님(1876~1968)

청송사과가 있게 한 분이 바로 이 분이라고 합니다.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 국광 10주를 가져와 청송 땅에 심었다고 하네요.

그게 바로 청송사과가 시작된 것이라고요. 

얘들아~!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시골버스와 손수레

그림이 참 정겹네요.

정말 살가운 그림이지요?

아주 재미난 그림도 있네요.

청송사과 그림 다시 봐도 예쁘네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리운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 나오는 길입니다.

마을 한쪽에 다 쓰러져가는 빈집을 보니, 또 애틋한 마음이 드네요.

청송군 현서면에는 훌륭한 분이 많으시네요.

 

통일벼 개발로 배고픔을 해결한 현서 출신 농학박사 송암 김인환 박사

아동 문학가이자 문학 운동가인 그리운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서면 구석구석을 돌아봤습니다.

청송, 영양, 영덕 쪽으로 나들이 갈 때에 자주 다니던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더더욱 살갑게 보이고 애틋함이 묻어나는 마을이네요.

 

이다음에 다시 와서 제대로 둘러보고 싶네요.

그때는 미리 전화해서 예약을 하고 와야겠습니다.

 

<이오덕 작은 문학관>

 

오늘 선생님이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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