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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청도읍성] 석빙고, 청도향교, 볼거리가 참 많은 읍성둘레 모아모아서 보자!

by 한빛(hanbit)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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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

앞선 글에서 청도읍성을 소개했습니다.

어제 쓴 글을 못 보셨다면, 아래에 링크로 걸어 놓을게요.

이제 이어서 읍성 둘레에 있는 또 다른 볼거리를 소개할게요.

먼저 청도 석빙고로 갑니다.

청도 석빙고

앞서 소개했던 읍성 반대쪽입니다.

이쪽도 읍성이 이어지는 곳이지요.

이곳에는 <석빙고>가 있답니다.

바로 겨울에 얼음을 가져와서 이 안에다가 넣어두고 저장했다가 이듬해 여름에 쓸 수 있도록 한 얼음창고랍니다.

석빙고 앞에서 보면 이렇게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답니다.

아래까지 굉장히 깊네요.

석빙고가 처음부터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게 아니랍니다.

 

이 아치형으로 된 홍예보 위로 판석을 덮고 그 위에다가 다시 봉분을 덮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보는 사진 위로 판을 덮고,

다시 그 위에다가 흙으로 봉분을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청도 석빙고와 현풍 석빙고

 

잘 이해가 안 되나요?

그러면 제가 하나 더 보여드릴게요.

현풍 석빙고

위 사진은 제가 2012년 자전거 여행 때 찍은 사진인데요.

대구 현풍에 있는 <현풍 석빙고>랍니다.

무덤처럼 큰 봉분으로 되어 있지요?

여기는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네요.

현풍 석빙고

이 봉분 아래엔 돌로 쌓아서 석빙고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청도 석빙고는 현풍과 달리 위에 덮은 판석과 봉분이 사라진 것이지요.

현풍 석빙고

현풍 석빙고는 이렇게 들머리에 문을 달아서 드나들게 하였더라고요.

 

현풍 석빙고

문 창살 너머로 찍은 현풍 석빙고 사진입니다.

안쪽 모양은 청도 석빙고와 많이 닮아 있지요?

그런데 청도보다도 현풍 석빙고는 천정이 낮네요.

 

청도 석빙고 옆면을 봅니다.

아까 말한 홍예보도 드문드문 비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넉 줄만 남아 있답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위쪽이 다 덮여 있었겠지요?

 

안을 들여다보면 돌들을 굉장히 촘촘하게 쌓은 게 보여요.

반대쪽에서 보는 모습이에요.

저 건너편에는 돌계단이 있군요.

아마도 저쪽이 드나드는 들머리가 되겠네요.

 

그런데 신기하지 않나요?

석빙고 홍예보가 정말 신기합니다.

돌로만 이어서 이렇게 아치형으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맞물려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지 말이에요.

다리 공사하는 걸 봐도 늘 신기하더군요.

 

 

아치형 홍예보가 어쩜 저렇게 잘 맞물려 있을까?

석빙고 입구에는 작은 석비 하나가 서 있다. 눈으로 보아서는 비문의 내용을 판독하기가 어렵지만 그 앞뒷면에는 빙고의 축조와 관련된 사항들이 새겨져 있다. 앞면의 내용은 “2월 11일 시작하여 5월 5일에 마치다.막일을 한 사람이 5,451인으로 모두 하루씩 부역했으며, 돌을 나른 승려는 607명으로 20일 동안 일을 했다. 석공 12, 야장(冶匠) 3, 목수 1명이 참여했고, 양식쌀 53섬, 와공전(瓦功錢) 300냥, 시우쇠 1,438근, 회(灰) 384섬이 들었다”고 되어 있어 공사에 동원된 인원, 공사 기간, 소요 재료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상당량의 쇠가 쓰여 그 용도가 궁금해지는데 돌과 돌이 잘 맞물리도록 드러나지 않게 사용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며, 많은 승려들이 동원된 사실도 주목된다. 뒷면에는 “계사()년 5월 초엿새 세움”이라고 비를 세운 연월일이 적혀 있고, 그 아래 공사에 관계했던 인물들의 직책과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그 가운데 박상고()라는 사람의 생몰연대로 미루어 석빙고를 만들고 비를 세운 계사년이 숙종 39년(1713)임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답사여행의 길잡이 8 - 팔공산 자락, 초판 1997., 11쇄 2009., 한국문화유산답사회, 김효형, 흥선, 김성철, 유홍준, 문현숙, 정용기)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작은 빗돌 앞뒷면에 석빙고를 만든 과정과 그 기록들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공사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나?

공사를 한 인원은?

어떤 사람이 공사를 했나?

공사를 끝낼 때까지 들어간 재료는?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기록이었다고 하네요.

그 중에도 상당량의 쇠가 쓰였는데,

그 쓰임새가 바로 돌과 돌이 잘 맞물리도록 드러나지 않게 쓰인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된다고 하는군요.

 

이 청도 석빙고가 세워진 때도 알 수 있는데, 

“계사()년 5월 초엿새 세움”

바로 숙종 39년(1713년)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아하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많은 쇠가 쓰인듯하네요.

현대식 건물을 세울 때에도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를 부을 때, 안에다가 철근을 넣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네요.

 

위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랍니다.

이 위로 판석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흙으로 봉분을 덮어서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에 많이 무너져버린 것이네요.

 

혹시 여기에 가서 구경할 때는 석빙고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청도의 옛 이름 도주(道州), 도주관과 청도향교

도주관

청도의 옛 이름이 바로 ‘도주’()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관아의 객사 이름이 바로 <도주관>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여기는 문이 잠겨 있어서 안은 구경할 수 없어요.

 

척화비

 도주관 앞에는 흥선대원군의 <척화비>가 있답니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를 자손만대에 경고 하노라"

청도향교

청도읍성 안에 볼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구경하기에 참 좋습니다.

석빙고를 봤다면, 이번에는 청도향교로 가봅니다.

 

청도향교는 '좌묘우학'으로 된 병렬형 배치 구조랍니다.

보통 '전학후묘' 배치를 지닌 곳이 많은데 여기는 좀 다르네요.

그러니까 묘우인 사당이 왼쪽에 있고,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오른쪽에 있는 배치랍니다.

 

청도향교 안에는 굉장히 큰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아직 헐벗은 몸으로 서있지만 그 가지를 뻗어서 굉장히 멋스러운 모습이랍니다.

청도향교 대성전

청도향교 대성전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가장 먼저 왼쪽에 있는 당우가 바로 사당인 대성전이랍니다.

대성전 앞에는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습니다.

 

청도향교 명륜당

대성전 오른쪽으로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앞에 동재와 서재가 있어요.

명륜당과 마주 보는 곳에는 <사락루(思樂樓)>가 있답니다.

<사락루(思樂樓)>

사락루는 계자 난간을 마치 보수를 하다 만듯한 모습이네요.

칠이 다 벗겨져 있었어요.

일부러 벗긴 듯 보였답니다.

 

<사락루(思樂樓)>

나중에 새로 칠을 하겠지요?

예전 사진을 보니, 붉은 칠이 되어 있었거든요.

 

청도향교는 흔히 잘 볼 수 없는 병렬형 배치 구조인 <좌묘우학>으로 이루어진 향교랍니다.

이런 점을 알고 보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오늘은 어제 청도읍성에 이어서 읍성 둘레에 있는 볼거리들을 한데 묶어서 소개를 했답니다.

청도 읍성
청도 관아인 도주관
청도 석빙고
청도 향교

이렇게 한데 묶어서 보시면 좀 더 알찬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

어제 소개한 청도 읍성은 링크로 걸어둡니다.

 

sunnyhanbit.tistory.com/38

 

요즘 언택트 관광지로 핫한 [청도읍성] 읍성 복원을 참 잘했다~!

예전에 막 복원을 하기 시작할 무렵에 갔던 기억이 있어요. 어쩐 일인지 그때 찍은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아 있네요. 저희가 예전에 하드를 한 번 날려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싹 다 잃어버린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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